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영국 팝 듀오 ‘왬!(Wham!)’은 서구권 팝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국의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듀오의 중국 방문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오는 7월 28일 전 세계 극장가를 통해 공개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왬!: 중국에서의 10일(Wham! 10 Days in China)’은 당시 복원된 영상과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1985년 4월 베이징과 광저우에서 펼쳐졌던 공연의 뒷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앤드류 리즐리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왬!의 중국 방문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왬!이 중국 외부에서 얻은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공연을 관람했던 중국인들의 인생 항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진정한 유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엄격한 통제 속에 있었던 중국 음악계에 왬!의 등장은 거대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1985년 베이징 노동자 체육관에서 열린 공연에는 약 1만 5천 명의 관객이 운집했는데, 그중에는 훗날 ‘중국 록의 대부’로 불리게 되는 추이젠도 있었습니다. 추이젠은 왬!의 공연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아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대표곡 ‘일무소유(Nothing to My Name)’는 4년 뒤 톈안먼 광장 학생 시위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기도 했습니다. 리즐리는 추이젠의 사례야말로 왬!이 남긴 가장 의미 있고 지속적인 유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방문의 이면에는 전략적인 계산도 숨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 ‘Wake Me Up Before You Go-Go’ 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왬!은 미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았으나, 조지 마이클의 성대 문제로 대규모 투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매니저였던 사이먼 네이피어 벨은 조지 마이클의 건강을 보호하면서도 단기간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중국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리즐리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경력상의 전략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지 마이클은 공연을 강행하기를 원했지만, 리즐리는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지 마이클은 당시 1983년 클럽 판타스틱 투어 도중 성대 부상을 겪은 터라, 무리한 미국 투어보다는 홍보 효과가 확실한 중국행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안전한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정치적인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왬!이 겪어야 했던 공식 연회와 외교적 행사 등 긴박했던 일정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리즐리는 “우리는 그저 관광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며 당시의 엄중했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또한, 2016년 세상을 떠난 조지 마이클의 음악적 천재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리즐리는 특히 ‘Careless Whisper’ 공연 영상에 대해 “조지 마이클이 보여준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로, 그의 찬란했던 음악적 기록을 후대에 남길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본기사: 마리아나 버라이어티 – Wham!’s China gamble and legacy revealed in retrospective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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